무능무지(無能無智)보다 자중지란(自中之亂)이 더 문제인 한국 외교부

일단, 틸러슨 장관의 한국내 석연찮은 행보에 대한 최초 보도에서는 우리가 만찬을 희망한 것과는 달리 미국측이 만찬을 희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미국측의 해명은 우리가 만찬을 초대하지 않았고, 그래서 한국과 미국간에 좋지 않은 분위기가 감도는 것으로 대중들이 오해할 까바 미국측에서 개인 일정을 내세워 만찬을 하지 않은 것으로 한국측에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일관적으로 강하게 희망하였다면 틸러슨 국무장관은 (기업가 출신다운 발상인지는 몰라도) 윤병세 장관과 만찬을 할 의향을 갖고 있었는데, 한국이 만찬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아서 별 수 없이 개인적 사정으로 만찬을 하지 않겠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는 의미다.


아니, 좌충우돌 하는 트럼프에게 적어도 대놓고 말을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과의 접촉점을 만들어 차기 정부에게 넘겨주어야 할 판국에 그 어려운 고시를 통과해서 외교관이 되고 미국내 문화적 분위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떠들던 외무관료들이 정작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엉뚱한 바보짓을 하면서 터무니 없는 결례를 범하다니, 이거 완전히 커다란 외교 실패가 아닌가.

서양인-특히 영미계-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일이건만, 우리 외무관료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도 미국측이 만찬을 먼저 제의해 오기만 기다리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행동하다가 기회 하나를 없애 버린 것이다.

게다가, 보도들을 취합하여 상상하면 외교부 내부에서는 틸러슨과의 만찬을 추진한 세력과 만찬을 하지 말자는 세력이 존재하였고 이 두 세력이 (차기 정권에서의 연줄을 잡기 위한)다툼을 하는 동안 공식/비공식 만찬 제의가 어디론가 사라졌고, 이것이 외부로 불거지니까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한국 언론에 자기들만의 멋대로식 해석을 유포한 것이다.


외교부가 국제정치 세계에서의 한국의 입장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능하다는 소리가 나온 것은 이승만 이래로 늘 나오는 이야기지만, 무능무지하다면 적어도 내부적으로는 다투더라도 외부인들에게는 철통같이 단결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국민들이 방심(안심이라고 하지 않는다!)이라도 하지, 내부적인 권력 다툼에 매몰되어 중요한 국제정치적 기회 하나를 날려 버리다니, 이것은 정말 최악의 추태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외부인들에게 서먹하기로는 한국인 뺨치는 일본인들조차 별별 기분 드는 것을 억눌러 가며 어떻게든 미국에 안면을 만들어 소통하려고 노력한 끝에 아베 수상이 트럼프 상대로 작년에 저지른 치명적 실수조차 극복하고 튼튼한 연결점을 만들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내에서는 트럼프가 중국에게 일본이 영유하고 있는 센카쿠 제도를 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조차 나오는 판국이다.

우리는 일본보다 더 무리해서라도 치열하게 뛰어야 할 이 시점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다가 기껏 다가온 기회를 자중지란으로 놓쳐버리고 오히려 불운만 키워 버렸으니, 이러고도 미국이 한국에게서 정을 떼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푸념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반론할 수 있을까?

한국 외교부는 철저하게 반성하는 것부터 시작하여야 지금의 국제정치적 위기를 극복할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by deokbusin | 2017/03/19 15:46 | 푸념, 악담, 그리고 기쁨 | 트랙백 | 덧글(13)
페미니스트가 보는 박근혜 탄핵 비판 감상

나로서는 공산주의 만큼이나 매우 불편한 이념인 페미니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페미니스트가 작성한 박근혜 탄핵 비판은 페미니즘 입장에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합리적으로 박근혜 탄핵을 비판한 좋은 글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요즘 여성우월론이라면서 비판되는 페미니즘에 근거하여 작성된 글이이지만, 남녀 모두 동등한 윤리적 기준을 적용해달라는 주장을 부인하고 부정하고 말살하자는 것은 잘못 발전될 경우 결국 민주주의의 윤리적 근거를 부정하고 부인하고 말살하자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을 정치적 올바름에 매몰된 주장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보편적 기준에 맞게 행동하여야 현실의 부조리를 해결하는 동력이 얻어진다는 점에서 아무리 불편한 이념에서 나온 글이라고 해도 윤리적 기준의 보편부당한 적용을 호소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된다고 본다. 특히 여성들이 주류가 된 분야에서는 남성들이 도리어 차별당하고 따돌림당하는 현실이 나타나는 세계적 상황에서 저 페미니스트의 비판은 결국 남성들에게도 페미나치의 억지에 대한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유용한 무장으로 사용될 수 있다.


저 서양 페미니스트의 글에 훨씬 못미치는 감정의 배설만 하는 한국의 페미나치들을 보면 한숨만 나오게 된다.



사족. 그런데 원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by deokbusin | 2017/03/18 16:22 | 푸념, 악담, 그리고 기쁨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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