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에게 독일군의 임무형 전술지휘를 도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이라는 제목하의 잡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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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택군님께서 제 블로그를 일부러 왕림하신 터라 일부러 그 분의 블로그를 방문하였다.

 
메모로그에 한국군의 현황을 비판하는 글이 두 편 실려 있기에 잠시 읽어 보았다.


첫 번째 글에서는 한국군의 결함중 하나로서 2차대전중의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경직화된 상태임을 지적하고, 지휘체계를 독일식 임무형 전술지휘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한 편에서는 쓴 웃음이 나와서 잡소리를 늘어 놓는다.


 독일육군의 지휘특성인 임무형 전술지휘체제는 19세기 중후반 대 몰트케가 거둔 대승리와 1, 2차대전에서 중과부족의 삼면전쟁을 치루어 패전하면서도 교전국에게 막대한 희생을 강요시켰다는 점에서 사실상 세계육군의 교리나 다름없는 상태로 떠받들어진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체현하는 군대가 창시자인 독일군외에 이스라엘군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거의 신적인 대접이 베풀어지는 느낌마저 있다.



 그런데 이 지휘체제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지휘관에 있는 게 아니다. 참모조직, 그 중에서도 작전참모가 사실상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물론 지휘관의 "결정"과 지도력도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임무형 전술지휘는 지휘관을 보좌하는 참모가 전선현장을 철저히 파악하고 지휘관에게 적합한 작전지도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만 제대로 기능하게 된다(즉 참모가 상시적으로 전선시찰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때문에 샤른호르스트가 세계최초로 참모본부제도를 만든 이후 프로이센 육군은 전술지도 능력이 우수한 참모육성에 극단적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투자를 했던 것이다. 참모를 육성하는 전쟁대학의 입학생이 졸업할 때는 고작 25%만이 남아 있게 된다는 사정은 바로 임무형 전술지휘가 참모의 능력에 좌우된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매우 우수한 참모들로 조직된 참모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프로이센-독일 육군은 중과부족의 상황하에서도 상대편에게 다대한 피해를 강요할 수 있었던 것이고 심지어는 5천도 못되는 사단병력으로도 "사단"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그리고 임무형 전술지휘를 특색으로 하는 독일육군의 교리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군대를 우리는 이웃에 두고 있었다.

 누구냐고? 바로 일본육군이다.


일본육군은 1880년대에 독일식으로 조직을 개편할 때 독일육군의 참모제도를 그대로 들여왔던 것이다. 참모를 육성하는 교욱방식도 마찬가지이고.


 즉 일본육군은 독일식의 임무형 전술지휘를 터득한 군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육군의 폐단이라는 참모의 독주, 폭주는 기실 일본문화의 현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독일육군의 교리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한 일본육군이 정작 2차대전에서 임무형 전술지휘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이유는 다름아닌 참모조직이 관료제의 장점이 아닌 단점에 함몰되어 현장과 격리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쓰지 마사노부를 제외하면 고급참모가 최전선을 방문하는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 일본육군의 참모조직이었고, 하급이라고 할 연대참모조차 전투현장을 방문하는 일이 없다시피했던게 저 시기 일본육군의 현상이었으니, 임무형 전술지휘가 제대로 일본육군에게서 발휘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요컨대 일본육군도 임무형 전술지휘체제를 조직이념으로 하고 있었지만, 책상물림과 관례중시의 관료화로 인해서 그걸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육군이 일본군화한다는 비판에 대해서 우리는 군대의 비민주성과 사병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우를 가지고 한국군=일본군으로 처리하지만, 실상 그 비판자들이 숭배하는 독일식 임무형 전술지휘를 일본군도 조직이념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율배반의 모순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군의 일본군화를 우려해야 하는 건 비민주성과 비인권성만이 아니라 관료화의 폐단에 대해서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군대는 사람을 효율적으로 죽이는 관료기구이므로 비인권성과 비민주성은 임무수행상 어느 정도는 용인되는 것이다. 그리고 군대가 관료제의 폐단에 함몰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다면 비민주성이나 비인권성도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것이다.



(3)
임무형 전술지휘를 정착시킬려면 우수한 참모들을 대량으로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수한 참모들을 보유할려면 그 기초인 장교단에 우수한 사람들이 대량으로 신규충원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독일군은 아주 특별한 이점을 누리고 있었다. 특히 전간기에 말이다.


1920~30년대의 영국군, 프랑스군, 소련군은 우수하다는 평판을 받던 장교들이 처우에 불만을 품고 전역하는 일이 빈번했다. 특히 1930년대에 그랬다.


 그러나 1930년대의 독일육군은 정반대로 우수한 인재들이 장교가 되겠다고 난리를 쳤다.


중위의 한달 봉급이 의식주를 모두 해결하고도 말 한마리와 자동차 한대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했는데 우수한 사람들이 장교가 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 덕분에 독일육군은 장교의 자질부족 따위는 걱정하지도 않았다.


장교들의 기초적인 질에서부터 차이가 났으니 연합국들이 그 개고생을 한 건 당연한 것이다.


 한국군의 폐단으로서 사병들의 복지와 전역후 대우가 개판인 것에 집중되는 것이 요즈음의 경향이지만, 정말로 임무형 전술지휘제도를 정착시키고 싶다면 장교들을 얼마나 우수한 인재로 충원시킬 수 있는가? 라는 문제에 매달리는 게 더 중요하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임무형 전술지휘는 사병이 하는 게 아니다. 소대장에서 장군에 이르는 장교들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장교들의 기본적인 자질이 낮다면, 과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장현장에서의 전술적 위기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서울대 입학생의 점수분포상으로 최우수에 해당하는 인재들이 육군사관학교를 가득 메우게 되어야만 임무형 전술지휘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그렇지 않다면 괜한 사병만 잔뜩 죽이는 재앙덩어리로 변하는게 임무형 전술지휘인 것이다.


 장교들이 시작단계부터 우수한 인재로 채워지고, 계속적으로 복무할 수 있게 될 때에야 비로소 임무형 전술지휘가 한국육군에게도 정착될 것이다.


덧글 :
어차피 군대도 관료제도의 일부이고 관료제도의 폐단을 군대도 가지고 있는 한, 한국군의 문제를 뜯어고치고 싶다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칸 그리고 분쟁지역에 대규모 전투부대를 파견하여 실컷 깨지는게 필요하다.

관료제도가 스스로의 약점을 개선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자기가 속한 조직 그 자체가 파멸한다는 위기감을 조직 내부에서 공유할 때 뿐이다.

프랑스와 프로이센이 그랬다. 전자는 "대왕"에게 된통 당하고 나서 육군을 대폭 뜯어발겼고, 후자는 나폴레옹에게 호되게 당하고 난 후에야 본격적으로 개혁을 추진한게 바로 그렇다.

한국육군도 마찬가지다. 한국육군은 베트남전쟁 이후 대규모 전투부대에 의한 전술행위를 한 일이 전혀 없다. 즉 지금 시점에서 한국육군은 관료제의 폐단이 조직내부에 충만한 상태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외부에서 자극을 주어도 제대로 개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라크나 아프간에서 된통 박살난다면 적어도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육군을 뜯어고치라고 난리를 칠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이 소란을 피우면 그 국민의 표로 먹고사는 국쾌돌이들이 육군개혁의 목소리를 높히는 것이고, 비전문가들이 자기 조직을 엉망으로 휘젓느니 차라리 자신들이 나서서 고치고 보자는 의견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굴러가면 바로 개혁이 추진되는 것이다.

30년 넘게 전쟁 한 번 제대로 안한 군대가 과연 군사적 혁신을 할 생각이 있을까? 평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이다. 특히 군대에게는 말이다.

by deokbusin | 2008/07/08 08:02 | 잡담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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