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다 켄지가 서술한 왕양명의 모습
시마다 켄지(島田虔次)는 쿄토대학 출신의 중국학 연구자로 <<중국에서의 근대사유의 좌절>>, <<주자학과 양명학>> 등을 저술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주자학과 양명학>>에서 왕양명의 신상에 대한 묘사를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은...

...왕양명은 명조의 문관이었지만, 군사지휘관으로서의 역량도 있어서 생전에 영왕의 난을 비롯한 수많은 반란을 진압하고 있다. 그 공적은 명조의 군지휘관들 중에서 탁월하여 명조 제일의 무장이라고 일컬어졌으며, 왕양명의 전공이 대부분 반란진압이라는 점을 높이 산 (공산당의 준동에 시달리던)장개석에 의해서 '비적 토벌의 철학자'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그 때문에 현대 중국에서는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철학 및 역사 서술에 있어서의 공식지침이 왕양명은 "주관적 유심론"이라고 낙인찍고 비판적으로 다루는 것이지만, 저런 사연도 있었을 줄은 저 책을 처음 읽었던 1989년 이전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슈타인호프님이 비적 용례에 대한 글(http://nestofpnix.egloos.com/4076129 )을 올리신 것을 읽고서 예전 추억이 떠올라 특별히 기념(?)포스팅을 합니다.


사족들 :
1. <<중국에서의 근대사유의 좌절>>은 1949년에 나온 것인데,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아마 석사학위논문일 것이다. 그런데 분량도 박사학위논문 급이고, 수준도 절대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이 책 이후로 왕양명과 양명좌파 그리고 이탁오에 대한 일본내의 견해는 사실상 시마다의 주장과 비슷한 견해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고전 급의 저서이고, 지금도 양명학 관련 연구자들이 읽어보아야 할 저작물 중 하나로 꼽힌다.

2. 1980년에 나온 미조구치 유우조(溝口雄三)의 <<중국전근대사상의 굴절과 전개>>는 시마다의 견해를 발전시킨 것인데, 한국에서는 엉뚱하게도 미조구치의 <<굴절과 전개>>가 먼저 번역되어 버렸다. 아마도 명청철학사 전반을 다루었기 때문이겠지만, 여전히 시마다의 견해를 시조로 하는 주장이 통용되는 양명학 연구의 현상으로 보건대 <<좌절>>이 번역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3. <<주자학과 양명학>>의 후기에서 시마다가 서술한 것도 있지만, 일본내의 중국철학 연구자들은 주자와 그 제자들의 문답집인 <<주자어류(朱子語類)>>를 반드시 읽어보아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 덕분에 <<어류>>전체를 읽었다는 일본인 연구자들은 꽤 된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일본보다(아니 중국도 함께) 더 철저하게 주자학적 사유관으로 살았던 사람들을 조상으로 모시는 우리나라의 중국철학 연구자들은 정작 주자학 관계 연구자들조차 <<어류>>를 전체적으로 읽어보았다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다. 특히 석사급 대학원생 레벨에서는 없다시피한데, 오죽하면 <<어류>>중에서 경학 및 역사서술 관련 항목 일부를 찾아서 읽어본 내가 석사과정 중에서 유일하게 <<어류>>를 손댄 놈 취급을 받았으니.

그러나 희한하게도 <<주자어류>>의 자국어 번역에 있어서는 우리가 앞섰다고도 우길 수 있는게, 일본측이 1960~70년대에 <<주자학대계>>의 일부 단행본으로서 주자어류의 일부를 편집하여 역주한 사례가 유일한 반면에 우리는 어찌되었든 <<주자어류>> 중에서 경학문답부분 직전까지의 철학적 문답부분을 모두 4권으로 번역해냈다는 점이다.

사실, 세계에 존재하는 주자학 관련 연구자들의 경향이 주자의 경학이나 역사학, 혹은 정치사회 관련 연구보다도 철학적 연구에 집중하다 보니, <<어류>>중에서 철학관련 문답을 모두 자국어로 소개해내고 간행한 우리네의 성과는 앞으로의 주자학 연구에 있어서 보다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고 허풍을 쳐도 무방할 듯 싶다.
by deokbusin | 2009/02/27 14:13 | 잡담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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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02/27 23:51
그러고보니 정작 장개석은 왕양명을 매우 좋아했다고 하지요. 남경근처의 산 이름 하나를 양명산으로 바꿀 정도로 왕양명에 항가항가 했던 분이라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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