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진위논란과 관련된 잡생각 한가지...
왜 일본 궁내청에다 물어보지 않은 것일까?

현재 유포되는 화랑서기 필사본은 그것을 작성했다는 사람이 1945년까지 일본 궁내성에서 촉탁근무를 했었던 시기에 궁내성 도서관 자료에서 필사를 한 것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궁내성의 후신일 궁내청에다 학회의 공식문건을 통해서 물어보는 것이 정상적인 수순이 아니었을까.

또한 도서관의 일차적인 업무중 하나는 소장하고 있는 문헌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여 공개하는 것이므로, 궁내청에 도서관조직이 있다면 당연히 소장목록이 공개적으로 유포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일본 국내의 도서관들을 방문해서 확인해도 될 것이고.

설령 궁내청 산하에 도서관이 없고 단시 문헌보관실만 있다고 해도, 외교경로나 일본측 학계조직을 통해서 검색을 요청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문헌비평이라는 방법론"만"을 가지고 <화랑세기>에 대한 진위논쟁을 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진지하달까 너무나도 답답하달까.
by deokbusin | 2009/06/16 05:02 | 푸념, 악담, 그리고 기쁨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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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耿君 at 2009/06/16 05:19
궁내성 서릉부의 한국 관련 서적 조사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http://www.riss4u.net/link?id=U8221323_

화랑세기와 관련된 서적은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Commented by deokbusin at 2009/06/16 06:39
귀중한 자료를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작 원래 출처에서 이미 없다고 결론이 난 것이 이미 10년이 가까이 되는데도, 최근까지 아직도 진짜입네 하는 주장이 교수라는 분의 입에서 나오다니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6/16 07:50
저러면 늘 나오는 답변이 있어요.

"사실은 훔처간 문화재 화랑세기를 일제가 고의로 숨겼다"

ps: 목숨(?)을 걸고 화랑세기를 필사한 박모씨가 독립투사급 대우를 받아야한다는 이야기도 첨에 나왔다고 합니다. OTL;;
Commented by deokbusin at 2009/06/16 09:06
저도 처음 기사를 읽었던 1980년대 말인가 90년대 초에는 PS와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진본이 확실하다면 심하게 말해서 신라사 연구를 화랑세기 발견전/발견후로 구분지어 버릴 수도 있는 문헌이니까요.


그런데 고의로 숨겼다는 주장도 1980년대까지라면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에겐 그럭저럭 통할 겁니다.--; 학계의 폐쇄성은 둘째치고, 당장 알수 있는 정보가 저 시기의 일반인에는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Commented by 번동아제 at 2009/06/16 08:47
일본 궁내성 서릉부에 소장된 한국 서적이 무엇이 있는지는 조사가 이미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목록도 떠 있습니다. 소장된 자료는 약 600여종 되는군요

http://koreanbooks.nricp.go.kr/search_di.asp?gotopage=10&mcode=03&mcode1=002&mcode2=002&mcode3=&vstart=01#top1

조선 후기 전적이 대부분이고 전기 것도 얼마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이 누락이 없는 조사냐라는 질문은 나올 수 있겠네요

Commented by deokbusin at 2009/06/16 10:19
실질적으로는 누락이 없다고 보아야 겠지요.

19세기말부터 일본에서는 중국정사의 예문지/경적지 등에 명칭이 기재되었지만 정작 중국내에서는 사라진 문헌 - <黃帝內經太素>와 康平本<傷寒論>이 대표적입니다. 둘 다 송대 교정국의서로 확립된 황제내경과 상한론의 판본적 문제점들을 보완하는 자료로 취급됩니다 - 들이 발굴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고문헌들을 소장하는 문고(말그대로 문헌창고입니다)나 사찰, 고서점들(--;;;)이 혹시라도 자기네들도 그런 경우가 있는가 하고 한바탕 자기네 서고들을 뒤집을 테니까 지금에 와서는 과연 누락이라는 것조차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게다가 희귀본에다가 유일본입니다. 그런 책을 소장하는 도서관은 그 격이 몇 단계 높아지는데, 그걸 숨기려 들까요? 적어도 한국에서 공개되면서 출처가 자기네 궁내청 서릉부라고 했을때, 서릉부가 먼저 서고를 조사했을 가능성도 있지요.
Commented by 번동아제 at 2009/06/16 20:19
네 화랑세기 정도의 제목을 가진 책이면 벌써 존재가 알려져야 정상이라고 봐야겠죠.

다만 화랑세기 존재 여부 논쟁에 관계없이 서릉부 도서에 대한 서지학적 조사...특히 한국측의 조사는 충분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입니다. 허영란 국사편찬위 편사연구사가 역사와 현실 59호에 기고한 "일본 궁내청 서릉부와 한국 고도서"라는 글에 잘 나와 있죠. 특히 50년대에 작성된 일본측 목록에 1000여종이 넘는데 문화재연구소측 목록은 600여종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외부 인사의 경우 서릉부에선 목록에 있는 자료를 신청후 열람하는 방식으로만 조사가 가능하지 개가식 조사는 시행하지 못했습니다.

조사가 쉽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물론 이른바 "환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사를 왜곡하거나, 혹은 무언가 한국 역사에 대한 엄청난 비밀 자료를 은폐하려고 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한국 측의 반환 요구에 대한 걱정 때문이죠. 개인 수집이나 구매 방식이 아니라 통감부/총독부 자원에서 조직적으로 이관된 자료는 법적으로 한국으로 반환해야하고 실제로 60년대 중엽 한일 국교 재개 협상 과정에서 서릉부에서 한국으로 반환된 문헌도 일부 있었죠. 이런 문제 때문에 서릉부에선 보유 한국본에 대한 외부 조사에 매우 소극적입니다.

물론 화랑세기처럼 제목 자체가 눈에 띄는 책이라면 일본측 학자들의 자체적인 검증과정에서라도 드러나야 정상입니다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일본 내에 누락된 한국본 책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쪽에 걸고 싶습니다. 이런 쪽에서 자체적으로 작성한 목록들이 그렇게 충실한 편이 아닌데다 당장 50년대 중엽부터 한국측의 반환요구가 제가되면서 서지학적 조사가 더욱 부실해진 측면이 분명 있으니까요. X위대 도서관 등 한국본 전적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조차 한국측 전통 병서들을 보유하고 있는걸 제 지인의 사진으로 확인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사진으로 찍어온건 대부분 우리나라에도 남아있는 책이긴 합니다만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책들도 있더군요.





Commented by 我行行 at 2009/06/16 12:55
日本 宮內廳 書陵部에 花郞世紀가 보관되어있고 일부 선택받은 국수주의 사학자들만 열람하거나 연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 알려진 화랑세기보다 더 많은 분량이 미공개로 있습니다.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화랑세기에 일본고대사의 비밀, 일본 왕가의 비밀이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전부가 공개되면 일본은 고대 한국의 식민지였으며 일본 왕가는 백제왕가의 혈통이라는 게 들어나기 때문에 모두 함구하고 있습니다.



라고 일부 화랑세기 신봉자들은 주장할겁니다.

그리고 엄청난 보안시설인 황실 서고에 조선인이 출입하고 희귀 문서를 필사 할 수 있었다는 것 역시 미슷해리가 되겠습니다.
Commented by 말코비치 at 2009/06/16 17:11
요새 선덕여왕 보면서 느끼는건데 화랑세기 바탕으로 드라마 만드는 것까지는 좋은다, 마치 실제 있었던 일인양 밑에다가 설명 다는 것이 좀 -_-... 사실 사극 보면서 저건 진짜, 저건 가짜, 저건 논란 부분 뭐 이런거 고려하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Commented by 액시움 at 2009/06/16 21:18
이거 뭔가 드라마의 냄새가 나는데?
Commented by 海凡申九™ at 2009/06/17 02:00
근데 일본 국왕 보물창고에 박창화가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그게 진정 의문....
Commented by 냐냐냥 at 2009/06/18 03:50
그 진실 논란의 가장 주안점은 화랑세기에 있는 향가에 있습니다.
그 향가가 1970년대의 희대의 천재적인 박사님에 의해 제시된 향가 해석교범으로 해석이 되는데다가, 그게 국내에 전해지는 향가 25수에 포함이 안되는 건데 저걸 위작으로 보자면 당시 1950년대였던가? 그때 발표할때 발표당사자가 이미 향가해석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되고, 그러면 어째서 향가 해석할 수 있으면서 위서를 내어놓는가? 향가해석을 제시하는 쪽이 더 유명세를 탈수있지 않은가? 라는 의문도 남게되지요.
그리고 그걸 위서라고 단정하시는 많은 교수님들이 주장하시는 주안점 중에 몇가지가 요즘 안압지 어른들의 장난감(?)발견등으로 무너지는 것도 화랑세기 진위여부에 (안그래도 장작불 활활타는데다가) 기름 한 드럼 쏟아부은격이라 할 수가 있겠네요. 그 주안점이라는게, 화랑세기에 나오는 화랑 중에 우리가 모르는 화랑이 너무 많다는 점이랑 내용이 너무 문란하다는건 주장의 신빙성에 문제가 좀 많지요. 남아있는 진위가 확인된 사서 중에서도 신라의 문란함을 비웃거나 욕하는 내용이 있고 안압지의 어른들의 장난감도 대량 출토되고 했는데 내용이 문란하다고 인정 못 한다는 것과, 자신들이 모르는 화랑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인정 못한다는 주장이 사실 전체 의견의 30%이상 먹고 들어가는데다가 나머지 위서 주장도 일본측 도서관에 문의하니까 그런책 없다더라 정도의 레벨이라서 50년 넘게 아직도 장작불은 잘 타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 at 2009/07/01 16:12
냐냐냥님 ..모 분 강의 들으셨나요? 말씀하신 토시하나 안틀리네요 전 그분 말씀보단 진본의 필사본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얘기가 더 믿음이 가던데..다른 분들의주장에 더 강력한 증거나 주장이 있기에 화랑세기가 위작이라는설이 다수설인거죠...양쪽의 증거들을 제대로 보시고 판단해야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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