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즌 선과 폴란드 동부국경선의 추이
링크 : http://ladenijoa.egloos.com/4179751 독일동부의 국경인 오데르-나이세 강의 확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폴란드 서부국경과 동부국경에 대한 추이와도 관련이 있다.


제1차대전의 도중, 러시아제국은 해체되고 새로운 공화국이 예전의 영토에서 성립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공화국은 사회주의혁명을 다시 맞이하면서 내전상태로 돌입하게 된다.

여기에 수반하여 대전이 종결된후, 유럽대륙 동부에서의 민족자결원칙에 따라서 새로이 신설된 국가들이 있었고, 그 중의 하나가 폴란드였다.

그러나 베르사유 강화조약등을 통해서 독일동부-폴란드 서부에서의 국경선 획정은 확립되었던 것과는 달리, 폴란드 동부국경은 많은 민족들이 섞여 사는 통에 획정 자체가 난항을 겪게 되었다. 그 이유는 폴란드측이 대폴란드주의에 따라서 적어도 폴란드 분할이전의 영역을 폴란드 영토로 하려고 획책한데 비해서 소련측은 내전이 마무리되지 않아 외교협상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도 결코 대폴란드주의를 용인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영국의 외무장관 커즌이 1919년에 제안한 폴란드-소련간의 국경선이 바로 커즌 선이다. 이 선은 현재의 폴란드-벨로루시 국경선과 거의 일치하는데, 그 기준은 민족분포였다. 즉 커즌 선 서부는 거의 모두가 로마 카톨릭교도인 폴란드 인이 거주하는 지역인데 반해서 커즌 선 동부는 폴란드인이 거의 없었고, 종교조차 그리스 정교회교도인 러시아인, 유태인들의 혼재지역이었던 것이다. 다만, 커즌 선에는 일부 예외적인 안인 B안도 있어서 폴란드 인들이 역사적으로 중시하는 렘베르크(폴란드명 루보프)를 폴란드령으로 하는 양보안도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합리적인 안조차 폴란드-소련간의 전쟁으로 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폴란드는 소련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적어도 제3차 폴란드 분할시의 영토에 거의 근접하는 영역을 회복하게 되었다.

이렇게 확립된 폴란드의 동부국경선은, 폴란드가 자신감과잉으로 독일과 소련을 대하다가 결국 1939년 독일과 소련에 의해서 폴란드가 사라짐으로써 다시 재조정을 맞이하게 된다. 즉, 소련은 커즌 선에서 소련령으로 인정된 지역을 회복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1945년에 이르러 소련이 독일을 패망시키게 되자 ,커즌 선의 원안대로 폴란드-소련간의 국경선이 획정되었다. 다만, 갓 태어날 폴란드 공산정권의 안정화를 위해서 였는지는 몰라도, 소련은 동프로이센과 슐레지엔, 폼메른 등의 독일 동부영토를 폴란드에 할양하는 조약을 성립시켰다.



커즌 선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파란 선과 녹색선이 커즌이 제안한 폴란드-소련의 국경선이다. 출처는 위키페디아.

폴란드의 역사상 최대판도를 나태내는 그림이다. 출처는 위키페디아.

폴란드가 분할,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그림이다. 대략 2차 폴란드 분할시의 폴란드-러시아 국경선이 전간기 폴란드-소련 국경선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는 위키페디아.
by deokbusin | 2009/07/07 11:26 | 잡담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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