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실로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나라다^^
일본이 중일전쟁 기간중 중국화폐-특히 법폐라고 부르는 중화민국 공식화폐를 교란함으로써 중국경제에 타격을 줄려고 하는 발상을 한 것은 의외로 빨라서 1938년 육군주계(主計)소좌 야마모토 겐조(山本憲藏)의 제안을 육군성이 받아들여 12월에 위조화폐를 만드는 스기기관(杉機關)이 설치되고, 1939년에 위조화폐를 유통시키는 誠達公司(책임자는 阪田誠盛으로 이 사람은 전후에 장개석정부의 대륙반공작전에 필요한 배를 조달하는 등의 경제활동을 하면서 대만정부를 도왔다고--;;;)를 만들면서 부터이다.

당시 중국의 화폐는 1935년까지는 이은행 저은행이 마구잡이로 발행하는 혼란상태였다가 이 해에 국민당정부가 은본위제를 재확립하면서 중앙은행, 중국은행, 교통은행의 3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만을 법정화폐(이하 법폐)로 인정-다음해 농업은행이 추가됨-하고 기타 은행이 발행하는 화폐 및 기존의 백은(白銀) 유통을 금지시키면서 화폐유통의 혼란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지방군벌이 확고한 지역내 세력과 풍부한 재원을 가진 곳에서는 지방은행의 화폐가 법폐의 유통을 누르는 경우조차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운남이다). 이로 인해 제일 큰 타격을 받은 외국세력은 바로 일본으로서 무제한으로 남발되던 지방폐와 함량미달의 은으로 중국내의 중요물자를 싼 값으로 조달하는 길이 사실상 봉쇄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법폐들은 전량 외국회사에서 인쇄되고, 법폐내 위조방지수단은 상당히 낮은 편이어서 위조가 용이한데다, 중국인들의 위조화폐를 막는다는 관념마저 부족한 바람에 위조화폐의 유통은 상당히 용이한 편이었므로 만약 일본이 적극적으로 중국내에서 위조법폐를 유통시키는데 성공한다면 중국의 경제적 혼란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위조에 들어가게 되자 상당한 장애가 발생하게 되었다. 화폐위조의 대상으로서 특히 신용도가 높았던 중앙은행법폐의 지질과 인색상인쇄의 완벽한 복제에 난항을 겪어서 다수의 실패 끝에 태평양전쟁 직전에서야 성공하여 대량으로 위조법폐를 인쇄해서 중국내에 유통을 시켰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아닌 법이다.

중일전쟁의 발발과 동시에 벌어진 일본해군의 중국항만 봉쇄 및 점령으로 인해 외국에서 법폐를 인쇄하고 들여오는 길이 사실상 차단상태에 들어가게 되자, 중경에서 법폐의 인쇄 및 발행 작업에 들어가 1941년에 이르면 법폐의 디자인을 일신한 새로운 법폐를 발행, 유통시켰다.

일본측을 더 골치아프게 만든 것은 중국측이 1937년부터 1944년 동안 발행한 법폐의 발행량이 그 이전 발행량의 100여 배가 넘는 1890억 元에 달해서 일본이 위조한 구형법폐 40억 元(위조비용으로 대략 8천 9백만 엔이 지출되었는데, 쇼카쿠급 항모 1척의 조달비에 상당한다)으로는 중국경제를 혼란시키는 데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제목의 "중국은 실로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나라다"라는 말은 스기기관의 책임자인 야마모토 겐조가 중국 스스로가 벌려놓은 무차별 화폐발행으로 인한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질려버린 나머지 탄식조로 말한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말이 과연 존경심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감탄인지, 중국측의 멍청한 짓에 대한 야유조의 감탄인지는 독자분들의 상상에 맡길 따름이다.



사실 위조화폐는 일본만이 만든게 아니라 전시하의 나라라면 모두가 적대국의 경제를 교란하기 위해서 손을 대는 행위이다. 영국은 미국독립전쟁중 미국측 화폐를 대량위조하여 식민지 경제를 붕괴로 몰아갔고, 프랑스 혁명기에는 프랑스화폐를 대량 위조한 전력이 있다. 프랑스제국은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지폐를 대량 위조(오스트리아의 경우는 좀 달라서 빈의 조폐창에 남겨진 원판과 인쇄기로 찍어낸 것)하였다. 1차대전중에는 영국정보기관이 오스트리아-헝가리 크로네를 위조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2차대전 중에는 주요 참전국 모두가 대놓고 적대국의 화폐를 위조해서 유통시켰다.가령  미국측은 일본측 군표를 대량위조해서 필리핀에서 유통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2차대전 후에도 위조화폐의 발행에 국가기관이 개입한 사례는 심심치 않아서, 프랑스 정보부는 60년대에 친소적인 기니아의 화폐를 위조해서 유통시켰는데, 그 품질이 체코제 정식화폐보다 훨씬 좋아서 습기와 고열로 인해 화폐의 도안이 지워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중국의 경우 1949년 이후 한동안 소련정부에게 3/5/10원권 자국화폐의 인쇄를 의뢰했는데, 중소관계가 악화된 후 5원권 및 10원 권 위폐가 대량유통되는 흔적을 발견하여 결국 1964년 3/5/10원권 도안을 새로 갈아치우고 기존화폐들을 회수하였지만 적시에 도안을 변경했음에도 불구하고 10원권 화폐는 2년 가량 회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한다. 만약 1964년 이전 해당액의 중국화폐를 가지신 분들은 잘 보관해 두시길. 진폐가 워낙 희귀해져서 수집가치가 꽤 된다고.^^
by deokbusin | 2010/07/21 13:09 | 잡담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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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초효 at 2010/07/21 13:44
오오오, 좋은 거 배워갑니다.
Commented by deokbusin at 2010/07/24 07:13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10/07/21 14:09
특히 제3제국이 수용소의 유태인 기술자들을 픽업해서 완벽에 가까운 달러 위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Commented by deokbusin at 2010/07/24 07:14
그것이야 이미 전설 중의 전설이 되었죠. 영국은 아예 화폐중 한 종을 없앴다나 뭐라나...
Commented by TBSH at 2011/10/25 17:30
베른하르트 작전은 이미 제공권을 상실한데다가 1급 지폐를 친위대원이 챙기는 바람에 시망
Commented by JOSH at 2010/07/21 16:46
중국 무서운 아이...
Commented by deokbusin at 2010/07/24 07:14
어떤 의미로는 말이지요...
Commented by 블루드림 at 2010/07/21 20:23
역시 대륙의 기상이군요. 만약 한국과 중국이 싸우고 위조지폐가 발행된다면...
엄청나겠군요~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10/07/21 20:58
1930년대 몇 안되는 국민당정부의 업적이 법폐발행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일도 있었군요...=_=;; 이것이 바로 1930년대판 '대륙의 기상'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JOSH at 2010/07/21 22:04
본격

법폐가 쓰러지지 않아.
Commented by deokbusin at 2010/07/24 07:16
업적을 만드는 것도 부수는 것도 자기 손으로 하는 법...
Commented by 이레아 at 2010/07/21 23:47
장개석 : 나의 화폐물량은 폐산폐해를 이룬다!
Commented by deokbusin at 2010/07/24 07:17
그리고 중원의 권력을 택동이에게 강탈당하죠.
Commented by 동쪽나무 at 2010/07/24 23:19
중국은 벌여놓는 일마다 규모에서 놀라게 하는데 자폭도 스케일 크게 하는군요
Commented by 에드워디안 at 2010/07/29 02:39
역시 대륙의 기상! 뻘짓도 통 크게 하는군요...;; 저 때 호되게 데인 경험때문인지 장개석은 대만으로 건너간 후, 인플레 안정에 엄청난 심혈을 기울였더군요. 다행히 성공을 거둬(61년까지 3%로 인플레율이 하락), 대만경제의 고도성장에 초석을 다지게 되었죠.
Commented by hyperion9710 at 2017/06/02 08:10
1890억 위안 ㅋㅋㅋㅋㅋㅋㅋㅋ 40억 위안이 껌값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중국 클라스가 남다르죠 제 손으로 인플레이션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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