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형성기 중 청년 마르크스의 환경이 달랐다면?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 정치 전망의 핵심논리는 자본주의 체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폭력혁명이 유일무이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면서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독재만이 사회주의/공산주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정치체제라고 규정한다.


사회주의자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상기한 바대로 기존에 일어난 사회주의 "혁명"의 모습은 폭력적이고 극소수 "프롤레타리아(?)" 엘리트에 의한 전제정치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자신의 정치와 사회철학을 확립해 나가던 1830~40년대의 독일사회 특히 프로이센에서는 군인기풍의 전제군주와 농지에 얽매인 지주층이 주도권을 잡은 신분제 의회의 결합에 의한 폐쇄적 정치가 주도하고 있었다. 요컨대, 실질적으로 독재정치라고 야유받아도 변명이 어려웠던 것이 1870년까지의 독일정치였던 셈이다. 물론 자유주의자들이 의회 의원으로 충원되면서 왕권과 군부와 결탁한 보수주의자들의 전횡을 견제하기는 했지만 그 조차 위대한 "협잡꾼" 비스마르크의 농간에 말려들어가 자유주의적 정치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런 사회에서 정치와 사회개혁을 강경하게 주장하던 마르크스가 의회 주도권을 장악하여 무산자 혁명을 주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게다가 마르크스가 모델로 삼았을 프랑스혁명은 사실상 폭력으로 혁명을 주도한다는 인상이 강렬한데다, 특히 혁명의 순수성을 지향한다고 보이던 자코뱅은 거의 독재적 인상을 보였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자신이 구상하던 미래사회의 건설을 프롤레타리아가 독재적으로 주도하는 폭력혁명으로 이루어 진다고 논설한 것은 마르크스가 처한 시대적 조건하에서는 그런대로 합리적인 논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르크스 사후인 1880년대부터 시작된 영국의회의 선거권 확장에 이에 따른 노동자 계층의 정치력 강화 현상은 마르크스가 자신의 철학을 형성하던 시기의 독일과는 다른 정치적 풍토를 만들었다. 차티스트 운동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보통선거권이 확립되어 가면서 노동자들이 선거를 통해서 의회정치에 압력을 행사하는 길이 열리고 초보적이나마 노동자들의 복지가 확장되자, 베른슈타인처럼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된 혁명가들 일부가 폭력혁명 대신 선거혁명으로도 사회주의가 구현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국 정치구조의 변화를 보고 있던 말년의 프리드리히 엥겔스-마르크스주의의 공동 창조자라고까지 할 정도로 마르크스의 작업에 깊게 개입한- "영국에 한해서는 선거를 통해서 사회주의가 구현될 수도 있다"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월간조선>의 1990년대 기사). 그리고 이렇게 변한 엥겔스 옆에서 영국의 변화를 보았고 엥겔스 유언집행인으로 지명된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주의를 사회민주주주의로 수정한 베른슈타인이었다. 베른슈타인의 마르크스주의 수정은 결국 엥겔스의 변화가 단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19세기 말 엥겔스가 의회진입을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베른슈타인이 폭력혁명이 아니라 선거로 사회주의를 구현한다고 수정한 덕분에 1913년 독일사회민주당은 제국의회의 제1당이 되는데 성공했다.




마르크스가 폭력혁명을 사회주의 구현의 당연한 명제로 설정할 당시 상당한 수준(?)의 군사지식을 가지고 조언한 엥겔스가 영국한정으로 자신과 마르크스가 설정한 명제를 수정(혹은 포기)할 정도였다면, 마르크스도 청년기를 보낸 독일사회가 보통선거로 구성된 의회에 의한 입헌군주정에 의한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 수준의 사회민주주의 정치노선으로 상당히 온건화된 정치적 변화를 위한 방법론을 구상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을 것이다. 


즉, 마르크스가 자신의 철학을 형성하는 청년기의 독일-특히 프로이센-이 군인적 전제군주와 신분제 의회의 합작에 의한 주류층 일방주의로 정치와 사회가 운영되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의 폭력적 인상에 기초하여 폭력혁명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만이 사회주의 정치의 모습이라고 예상한 것이고, 만약 군주의 정치개입이 축소되고 의회내 정치권력의 교체가 자유로운데다가 교체과정에서 노동자 계층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합법적이고도 최대한의 역량으로 발휘할 수 있는 체제가 마르크스의 청년기 독일의 정치구조였다면, 마르크스가 사회주의를 구현하는 방법론은 베른슈타인의 그것과 유사해졌을 것이다.

사실, 학력(學力)은 박사학위를 딸 정도로 높았지만 정작 학벌은 원래 입학한 대학이자 프로이센 학술계의 중심인 베를린대학이 아니라 좀 처진 편이라는 예나 대학에서 박사를 받음으로써 교수직 획득이 불가능했다(폴 존슨 <지식인들> )는 비아냥마저 있을 정도로 마르크스가 고학력자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걸맞는 직장을 가지지 못하고 불규칙하고 낮은 수준의 수입에 의존한 것도 마르크스의 과격론에 한 몫을 단단히 했을 것이다.




인간이 한 번 형성한 사상은 극심한 충격이 아니고서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은 문재인을 둘러싼 운동권 무리들의 행태만 보아도 분명한 사실이다-특히 이득이 걸려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엥겔스가 보여준 미약한 변화, 그리고 베른슈타인의 혁신을 보면서 인류의 보편적 이상을 개인적 이익의 확보보다 중요시한다면, 자신의 철학 전체를 포기하고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지는 않아도 철학 내부의 중대한 결함을 수정할 수는 있다는 가능성은 현실로 구현될 수도 있다.

소수 도당의 특권적 이익을 수호하는 것으로 전락한 현실사회주의를 고집하면서 시민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하는 선동을 되풀이 하여 결국에는 자신들만의 기득권 수호와 종북친중이라는 인류사의 보편적 진보에 역행하는 권력자들이 된 자들에게는 저러한 변화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위기에 빠진 한국의 미래 그리고 위기에 빠진 한국 보수층들에게 보수주의로도 진보적 혁신을 구현할 수 있음을 증명한 카를 폼 슈타인처럼 행동하기를 바란다.
by deokbusin | 2018/04/15 15:36 | 망상폭주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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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스카라드 at 2018/04/17 11:44
정신줄 놓은 부르주아 무직자가 아무리 주위 여건이 좋다고 해도 무개념 망상을 안 할리가 없지요. 당장 국내 현황(운동권,나무위키)을 봐도 과대망상과 이상론에 빠진 볼세비키 맹신론자들이 우글거리는데요. 마르크스는 그 자체로만으로도 인류세계의 해악이고 어크 시리즈 방식으로는 암살단의 칼날에 죽어야 할 악역 수괴입니다.


마르크스는 인류세계를 위해서라도 나이 서른이 되기 전에 죽든가 어린 시절에 요절하든지 해야 할 아웃사이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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